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셔오도록 하는데 성공(2차 시켈리아 방문). 그러나 그곳은 갖은 정치적 음모와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다(365년). ⑥ 이로부터 4년 뒤 시켈리아에 평화가 회복되었으나, 참주는 디온으로 하여금 한 해를 더 기다리게 한 후, 플라톤만
사상은 한 마디로 군국주의적 국가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스파르타 교육의 목적은 극기와 엄한 규율생활을 통한 상무적인 무사양성(武士養成)을 근본적인 교육목적으로 하였다. 즉, (1) 전쟁시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개인의 군사적 능력을 기르고, (2) 국가에 충성하고 명령과 법률에 복종하는 습관을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적 자유 등을 갈망하였다. 따라서 자유시민들이 이러한 자유를 누리고 선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교육으로 여겼다.
셋째, 주지주의적 성격이다. 그리스인들은 이성의 힘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
않았다. 그럼으로써 종교적 규범 도 파괴될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연법이란 본질적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권력의 사상으 로 나타난다. 그래서 강한 자가 약한 자보다 많이 갖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자연법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규범은 그런 권력을 억제하는 합의의 결과로 보았다.
정치가이며 장군이었던 알키비아데스를 목숨을 걸고서 구해냈다. 그러고도 그 용감한 행위(勇氣)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훈장을 마다 했다.그는 한 때 오백인 의회(五百人 議會, 아테네의 10개 지역에서 각각 50명씩 선출하여 구성된 정치 주요기관으로서 법령의 심의권 및 행정의 최고 감독권을 소유